oh~ paris~

singing   2011/07/26 11:01
연초부터 아내와 계획 한 여행. 파리에서 7일 그리고 뮌헨에서 3일. 개인적으로는 처음 가는 유럽이다. 무지하게 설레기도 했을 법한데 떠나기 수일전까지 전혀 그러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었나? 그러나 왠걸.. 떠나는 주가 되니 월요일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를 어쩌나~ 그래도 아직 젊나보다. 하하~ 드디어 2011년 7월 7일 목요일! 떠났다. 파리라는 도시는 왜그리 세계인들이 한번쯤은 가보고 싶어할까? 비록 7일동안의 짧다면 짧은 파리여행이었지만 건물의 양식, 수많은 예술작품 이외에도 특색있는 문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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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골공항에서 파리의 도심으로 이동 중 처음 본 파리의 풍경은 산이 없는 넓디 넓은 들판, 그리고 그 들판과 맞닿을 듯 나즈막히 내려앉은 드라마틱한 하늘. 이것만으로도 온 몸의 감각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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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곳곳을 누비기 위해 이용한 지하철. 지하철의 무빙워크의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서울의 그것과 두배정도? 사람들도 무지하게 빠르게 이동한다. 바쁜가 보다. 거기에 구석구석 아주 알뜰하게 공간을 활용하여 무분별하게 그려진 그래피티, 널려진 쓰레기와 낡은 시설물, 미로처럼 좁고 동굴같은 통로, 뭔가 알 수 없는 냄새. 정신없다. 그 속에서 펼쳐지는 미니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선율. 뭐라 정의하기 모호하다. 처음엔 거북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듯 했다. 바로 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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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별로 루브르, 오르세, 퐁피듀 순으로 미술관에 들렀다. 그 안에 소장된 막대한 양의 작품들.. 뭐 이런데가 다 있나? 너무 많으니 그 소중함이 퇴색되는 듯한 이 어이없는 기분. 대부분의 미술관에서는 고등학교 시절 미술학원과 교과서에서 보던 작품의 원작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작품 자체에서 오는 감동은 물론이거니와 작품을 대하는 접근법도 남달랐다. 예를들어 사모트라케의 니케상을 대면하기 위해 사람들이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은 마치 대규모 숭배자들의 모습이었는데 이런 면을 보면 작품들을 배치한 스케일과 작품을 대하는 세심한 배려를 엿볼 수 있다. 여기에 덤으로 퐁피두에서는 웅장한 구름을 품에 안은 파리시내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처음보는 파리시내의 전경이었다. 이보다 더한 금상첨화가 있으랴!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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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분주하게 다니는 와중에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참으로 느긋하기 그지 없다. 저 사람들은 조상들이 이루어놓은 화려한 문화유산? 관광자원? 덕에 저리도 여유롭나? 하하~ 바통무슈를 타고 세느강을 유람하는 와중에도 승객들에게 손을 흔들고 웃어주는 여유로운 센스. 나와 아내가 파리를 구경하러 온 사람인건지 파리의 사람들이 나와 아내를 구경하는 건지 모호해졌다. 도리어 나와 아내가 파리의 관광자원으로 탈바꿈된 듯 한 느낌이었다. 적어도 이방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이 마저도 파리가 가진 마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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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드골공항에서의 두시간 사투 끝에 독일의 뮌헨으로 왔다.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두시간동안 비행기 타는 곳을 찾지 못했다. 여행첫날부터 이미 물집으로 얼룩진 나의 발과 무거운 짐을 이끌고 그 넓디 넓은 공항을 전력질주했다. 그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은 잘도 간다. 탑승시간 15분전이다. 아직 탑승수속도 못했다. 자포자기의 끝자락에서 들리는 아내의 한마디. "여기다!" 아~ 섹시하고 황홀한 목소리여~~ 역시 아내밖에 없다. 하하~ 그렇게 맞닿은 뮌헨의 하늘... 역시 고요하고 웅장했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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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의 모습과 사람들이 파리의 그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큼직한 선을 가진 건물, 선 없는 건널목, 깨끗한 거리, 사람들의 차림새등 여러면에서 장식을 최소화한 느낌이다. 직선이 가진 고지식함과 견고함. 국민성이 어느정도 엿보인다. 미술관의 내부만 봐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재미는 다소 떨어지지만 묵직하게 오래가는 실용성이랄까~ 뭐 여튼 독일스럽다. 그러고 보니 푸조가 왜 프랑스차이며 BMW가 왜 독일차인지 조금은 감이 온다. 디터람스도 생각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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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좌충우돌... 아내와 나는 이번여행의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이날을 위해 사 간 소주와 뮌헨에서 산 맥주, 그리고 소시지를 즐기며 이번여행에 대해 서로 얘기했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했다. 가슴에 남은 파리, 머리 속에 남은 뮌헨... 그리고 손에 잡힐 듯 웅장한 하늘...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

dreaming   2010/06/1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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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국립현대미술관의 큐레이터인 김남인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얼마전 덕수궁현대미술관에서 오픈한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의 전시 아이덴티티 디자인과 도록 작업 등을
바프에서 맡아 진행했었는데 그 결과에 대한 깊은 만족과 감사의 말씀을 전하시는 내용이었다.
미술관은 물론, 작가들도, 그리고 외국의 여러 관계자들로부터도 도록에 대한 칭찬과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고 전해주셨다.
이번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진행되었던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클라이언트에게 큰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줄 수 있었던, 그로 인해 다시 우리에게 기쁨과 보람을 주었던 참으로 고마운 일이 되었다.
그 분은 예의를 갖추고자 대표인 나에게 인사의 말씀을 전해오셨지만 이번 일은 100% 여형팀장의 애정과 노력,
그리고 실력의 결과물이다. 많은 어려움을 수반하였던만큼 큰 공을 모두 여형팀장에게 돌린다.
이 일을 통해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프로젝트에 대한 애정과 노력은 가장 오래된 굿디자인의 노하우가 아닐까 싶다.
전시 오프닝 날 미술관의 기둥을 따라 늘어뜨려져있는 자신이 디자인한 배너 앞에서 기쁨과 보람을 감추지 못하던 여형팀장의
표정이 담겨있는 사진을 찾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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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우의 백일

dreaming   2010/05/1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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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가 중인 설희대리가 아기를 안고 바리바리 떡을 싸가지고 사무실에 들렀다.
'준우'가 태어난지 어느덧 백일이 되었다고 하니 정말 세월은 빠르다.
이제 제법 사람 꼴이 나는 준우. 그리고 제법 엄마꼴이 밴 설희대리.
따끈따끈한 백설기를 나누어 먹으며 설희대리가 늘어놓는 애기보기 고생사에 웃음을 나누며
다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겪게될 인생의 한 시점에 잠시 머물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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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더 꽃

dreaming   2010/04/20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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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햇살에 홀딱 마음을 빼앗기고 있던 오후
점심을 먹고 돌아오던 유진과 지영이 환한 미소를 띠며 불쑥 꽃다발을 내밀었다.
노란 미니 장미화분과 소담한 이 뭐더라.. 꽃다발.
꽃보고 행복해 하는, 꽃보고 행복해 할 누군가를 생각하며 행복해 하는,
꽃보고 행복해 할 누군가를 생각하며 행복해 하는 그들을 보며 또 행복해 하는,
온통 행복한 마음들이 햇살 속에 환히 웃는다.
어여쁜 두 처녀의 환한 미소는 꽃보다 더 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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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가는 종수팀장

dreaming   2010/04/17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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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수팀장이 드디어 복귀를 했다. 장가갈 날을 앞두고 도진 허리 디스크 때문에 이를 앙다물고 치료에 매진하였던 지난 한두달 동안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이겨내어 이제 다음 주면 결혼식이다. 신랑이 될 종수 팀장과 새색시가 될 한나씨. 새롭게 탄생하는 커플을 축하하며 바퍼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건강한 모습으로 한자리에 모여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것. 그 이상 무엇을 바랄까.


영덕게 파티

dreaming   2010/02/22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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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로 배달된 영덕게가 그득하게 들은 상자 두 개- 구룡씨의 부모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이다.
얼핏 보아도 스무 마리는 족히 되어보이는 이 난데 없는 먹을 복 앞에서 바퍼들은 모두 기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래도 결국은 다물어야 했다. 게살도 씹어야 먹을 수 있으니까. ^_^)
영덕게도 역시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고 구룡씨의 다년간 축적된 게살발라먹기 노하우는 가히 올림픽 출전감이다.
노하우는 이러하다. 게다리의 발톱(?) 부분을 똑 분지른다. 이를 다리살 바르기 전용 도구로 삼아 게다리의 종아리,
내지는 허벅지 절단 부분으로 밀어넣으면 다리살이 쑥,하고 통으로 밀려나온다..
듣기는 별거 아닌 거 같아도 그 정확성과 속도의 관점에서 선수 차원의 노하우는 감히 범접할 수가 없다.
영덕게만으로 배를 불릴 수가 있다니 바퍼들이 누린 오늘의 호강은 가히 올림픽 금메달 수준에 육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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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 설희대리

dreaming   2010/02/02 12:48


바로 엊그제 우리가 쓰다듬어보았던 설희대리의 둥그런 뱃속에 들어있던 그 녀석을 직접 눈 앞에 보니 너무도 감동스러웠지요.
배고프다고 보채고, 우유 내놓으라고 호령하고, 트름해야겠으니 등 토닥이라 하고, 볼 일 다 봤으니 다시 주무시겠노라 하고..
언제 봤다고 지 마음대로 어른들 혼을 홀딱 빼놓는 거역할 수 없는 이 사랑스러운 생명체의 탄생으로
설희대리는 이제 '엄마'가 되었습니다..!

풍경

dreaming   2010/01/2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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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함께 시작한 2010년

dreaming   2010/01/12 11:42


2010년의 첫 출근날.
지난해 코엑스 브로슈어 작업을 위해 수고해주신 일러스트레이터 경연미씨와 점심약속이 예정되어 있었다.
엄청난 폭설 속에 점심 한끼 나누자고 성북동까지 오시라고 한 게 너무 무리한 일이 될까 아침부터 전전긍긍하며
함께 자리하기로 한 윤수 선생에게로, 지영에게로 이리저리 전화를 주고 받았다.
오시는 길이 불편할 터이니 저기 강남 어디 쯤에서 만나도 좋고요, 좀 늦은 오후나 저녁시간이 되어도 좋구요,
너무 힘드시면 무리하시지는 말구요... 하지만 경연미씨는 오히려 담담하시다.
12시에 맞춰 예정대로 오시는 중이라니. 역시 경연미씨는 쿨하다.
하긴 내일 모레면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시니 오늘이 아니라면 뒷풀이는 커녕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엉뚱한데서 발생했다.
폭설에 회사에 갈길이 막연해 디트로이트에서 눈 속에 운전하던 실력을 자랑할 겸 운전을 하고 나왔는데
길 중간에 서버린 차들 사이에 내차가 고립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나머지 사람들 먼저 식사를 시작하도록 하고 나는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 지점까지 가까스로 차를 움직여 세워두고
다시 지하철을 타 1시간이나 넘어 음식점에 도착하게 되었으니.. 에고. 에고..
하지만 어차피 늦은 거 나폴레옹 제과에 들러 여유있게 디저트거리를 사들고 들어가 약간의 면피를 시도하였다는..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눈 속에 모두들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경연미씨는 얼굴표정 손동작 몸동작 하나가 모두 자신의 그림 속 캐릭터를 닮았다.
눈으로 아늑하게 지붕을 만든 정원 입구 소나무 아래 지영은 꿈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베란다 너머로 온통 새하얀 서울 풍경은 웬지 넉넉하고 풍요로울 것 같은 새해를 예감하게 한다..


2009년 자기계발 휴가

thinking   2009/12/17 11:48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는 나만의 자기계발 휴가
-thinking

2009년은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때문에 나에게도 한동안은 바쁜 한해가 되었다. 8월부터 9월 중순까지 한달넘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도록을 만드는 작업을 하였다. 1,2주 동안 밤을 새고 야근을 하는것이 그리큰 부담은 없었으나 주말을 계속해서 나오고, 3주차에 접어들자 몸이 조금 이상 신호가 오기시작했다.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몸이 조금 상하는 것이야, 보람된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도록작업이 끝나고는 나를 위한 시간을 주자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렇게 한달간의 철야작업이 끝나고 무사히 도록의 인쇄감리까지 마칠 수 있었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일주일간의 휴가를 내어 나스스로의 지친 마음을 달래 자기만의 "자기계발 휴가"를 가기로 했다.

9월15일부터 9월20일까지의 휴가중 2박3일간 계획을 잡고 동해안 쪽을 혼자서 여행하기로 했다. 영덕집을 바로가지 않고 대구와 포항을 들려, 그동안 만나보지 못한 사람과 친구들 그리고 예전에 다닌 고등학교를 방문하는 그리 대단치 않은 계획이었다. 그러나 2009년 한해동안 스스로 혼자 여행을 떠나기는 처음인지라 적잖은 기대가 되었다.

월요일 일산에서의 인쇄감리가 끝나고 시끄러운 인쇄기소리와 작별을 고하며, 다음날 아침부터의 혼자만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나 스스로의 여행, 오랜만의 KTX안은 마치 무정여행을 하듯 신났다. 내 주변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부산과 대구를 오가며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거꾸로 여행을 가는 남쪽 노선에 몸을 실으니... 무언가 적잖은 기대감이 몰려왔다.


서울역
기차로 수없이 대구와 서울을 오가고 그림을 배우던 고등학교 수능이 끝난시절과 지금에 직장을 다니고 휴가차 내려가는 발길에는 미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기차를 많이 타본지라 나에게 기차로 여행을 하는것은 차나 배, 비행기로 여행하는것에 비해 훨씬 재미를 배가시켜 준다. 배는 너무 느리고, 비행기는 너무 빠르다면 기차는 적당한 속도와 시간에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부여해준다. 물론 지금은 KTX가 있어 2시간이면 대구를 가지만, 무궁화호를 타고 4시간동안 서서갈때는 무궁무진한 생각을 했다. MP3와 동영상으로 시간때우는 지금에비해 그때가 그리운 것은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시간동안 달린 KTX안의 시간은 한달간의 고된 시간을 정리하고 새로운 계획을 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대구
나에게 대구는 제2의 고향이자 10대시절을 채워준 충만한 공간이다. 거제도에서 태어나 영덕을 거쳐 대구, 그리고 지금의 서울로 크게 거점을 옮긴동안 대구만큼 가장 애정이 가고 추억이 많은 공간도 없다. 10대의 사춘기를 보낸 소위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가 배어있는 공간이다. 마치 태아가 자궁안에서 몸을 움츠리고 편안하게 잠을 자듯, 대구역에 바라본 대구의 풍경은 변함없이 따뜻했다. 2008년에 한번 내려가본 이후로 거의 일년만이다.


대구 - 중앙도서관
10대시절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공간은 대구에 있는 나의 고등학교와 중앙로라 불리는 시내의 도서관이다. 시간을 내어 먼저 중앙로에 있는 중앙도서관을 찾아갔다. 여기서 남상백이라는 친구는 독서클럽을 만들었고, 어느정도 겉다리로 문학을 즐기던 나에게는 녀석이 다니던 이 도서관이 적잖아 멋있어 보였다. 항상 어깨를 펴고 책을 읽던 녀석은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다시찾아간 중앙도서관은 여전히 공무원의 냄새와 대구 시민들의 냄새, 그리고 친구 상백이가 읽다만 책들의 냄새로 기분좋은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읽고 싶은 책은 모조리 읽고 시간을 보내도 배가 고프면 지하의 식당에 가면 저렴하게 밥도 먹을 수 있다. 어찌보면 국가에서 나에게 가장 큰 해택을 준것은 지금보면 이런 시립단위의 도서관인 것 같다. 근처에 공원도 있어, 문학소년이 꿈꾸는 공간으로 이상적이다. 상백이는 이 공간에서 독서클럽을 만든것이다. 그때만해도 그런 활동을 통해 다른 학교의 여자와 (남녀공학이 아니었으므로) 가장 건전하게 교류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속에서 많은 나의 또래들이 문학과 예술을 꿈꾸었을 것이다.


대구 - 경북고등학교
그러나 나에게 가장 큰 삶의 변화를 준 공간은 고등학교 도서관이다. 지금도 생각이 나지만, 한참 야구와 피구를 하며 무서운 식욕을 배출하던 10대시절, 친구가 친 테니스공이 굴러굴러 교내 뒷뜰 계단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경북고등학교는 대구에서 가장 큰 고등학교라, 왠만한 대학교만한 크기를 갖추고 있다. 때마침 흘러간 공은 그동안 내가 들어가지 못한 공간으로 흘러들어갔다. 그곳이 지금의 학교 도서관이 있는 곳이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건물외에 별도로 배치된 도서관은, 학교 외진곳에 위치해있어 왠만해선 들어가지 않았다. 소위 엄친아들만이 까끔 다니거나 정말 착한아이들이 드나드는 그런 공간이었다.

거의 5년만에 다시 찾은 고등학교 도서관은 그때 그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학생신분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밖에서 본 건물은 그때 흘러간 테니스 공을 줍는 나를 보여주었다. 마치 영화처럼 그렇게 계단으로 굴러떨어진 공을 잡는 순간이 스르르 흘러갔다. 그때부터 알게된 이 도서관에서 나는, 피카소와 몬드리안, 마네등의 화가들의 그림을 전부 읽고 보았다. 사실 글을 잘 읽지못해 그림을 더 좋아했는지라 대부분 그림책위주로 읽었다. 그리고 그때 본 예술가시리즈에 꽂친 하드커버의 전집책이 내 삶을 변화시켜준 작은 계기가 되었는지는 그땐 미처 몰랐다. 사실 아직도 내가 왠만한 그림을보면 작가의 이름을 바로 떠올릴 수 있는것도 이때읽은 책 덕분이다.

아직도 생생한 그때의 하드커버책은 표지도 없는 순백의 백자같았다. 누런 미색의 표지를 넘기고 반뜻반뜻한 듀오매트에 찍힌 그림들은 생생한 컬러와 이미지로 나에게 그림의 세계를 안겨주었다. 특히 마티스가 인상적이었다. 그가 올려붙인 색종이는 달팽이가되고 악기가 되었다. 특히 "오세아니아 Oc?anie" 라는 그림이 그때 가장 인상적이었다. 푸르지도 또한 바다도 보이지않는 종이에서 드넓은 바다가 떠오르는 것은 나의 착각인가? 그때본 그림대로 거친그림보다는 무언가 유기적이고 기하학적으로된 그런류의 그림들이 더 좋아졌고, 자연히 지금의 디자인을 하게된 우연한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포항 - 죽도시장
그날밤 다시 넘어간 곳은 포항이다. 군대에 다니던 친구 동엽이가 사는 곳이다. 정말 오랫만에 다시 본다. 역시나 저녁에 대구에서 포항으로 총알로 가는 택시가 재맛이다. 택시아저씨 입답도 들을 수 있고, 무엇보다 버스로 두시간 거리를 한시간만에 주파한다. 말그대로 총알택시다. 여전히 동엽이는 포항에서 해맑게 잘살고있었다. 둘이만난 죽도시장이라는 곳에서 거하게 회한접시를 먹고는 아침일찍 바다를 보러가자고 했다. 역시 포항은 바다가 제맛이므로...

포항 - 월포해수욕장
포항하면 사람들은 포항제철과 포항스틸러스 그리고 포항공대를 떠올린다. 전부 무슨 공대와 엔지니어 분위기다. 사실 포항에 내리며 보는 포항제철의 큰 공장과 기계를 보면 틀린말은 아니다. 그러나 동엽이와 같이간 바다는 정말 차분하고 평온했다. 월포해수욕장은 포항에서 바다보기 유명한 곳이다. 생각보다 평온한 가을의 바다를 보고있으니 정말 마음이 차분해졌다. 드넓은 바다위에서 남자둘이서 수다를 떨자니 게이로 보일까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했다. 녀석과는 군대를 같이다녀서, 물론 그때는 나의 고참이었지만... 가장 잘해주고 챙겨준 놈이라 아직도 깊은 정이간다. 지금은 둘이서 민간인이되어 바다를 보지만, 6년전에 바라본 바다는 최악이었다. 내인생의 바다는 절반이 군대에서 본것이다. 포항은 그래서 좋지만, 그리 좋지만은 않은 그런 바다다.

혼자만의 여행에서 친구를 만나, 바다를 보고있으니 마음이 편해진다. 갈메기 소리와 바다 냄새, 무엇보다 모래를 밝을 수 있다는 것이 좋다. 서울은 정말 시간과 돈이 교차하는 전쟁같은 곳이지만 이런곳에 나와 눈을 감으면 정말 자유로워진다. 지나간 나의 시간들은 발가락 사이로 들어온 모래와 바닷물로 인해, 다시 현재로 흘러들어왔다.


영덕 - 부모님의 집
동엽이와 하루를 바다와 보내고, 녀석의 고민과 나의 고민도 들으면서 아직 20대의 젊음에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을 뒤로하고 3일째되는날, 동엽과 헤어져 최종목적지인 영덕 부모님댁으로 돌아갔다. 서울에서 영덕으로 직행으로 간 순간보다, 이렇게 혼자생각하고 친구를 만나고 돌아가는 이 시간이 더 짧아보이는 것은 왜 그런것일까? 이틀간의 짧은 일정속에서 시간은 정말 버스안의 시간보다 더 짧고 더 재미났다.

그렇게 잠시나마의 나만의 방황기?를 뒤로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어떻게 사는지 정확히는 모르신다. 그러나 언제나 나는 아들이고 철부지인 느낌으로 부모님을 만나러간다. 항상 그래왔듯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부모님을 만난다. 언제나 걱정이 없냐며 물으시면 "괜찮아요" 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런 언제나가 지금도 그런다. 하지만 되돌아간 이틀간의 여행속에서 지난날을 뒤돌아보며 맞이하는 괜찮아요는 다른다. 모양과 형태와 소리가 같더라도 분명 무언가 변하는 순간을 느낀다. 사람이란 그런 변화들이 축적된 기억의 동물이 아닐까? 나는 무언가 계발을 하기보다는 이런 과거들을 다시 주워담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마티스의 오세아니아는 어쩌면 그런 기억의 조각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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