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꿈 이룰 수 없다 해도..

familytalk   2008/08/18 16:12


'돈키호테(Don Quixote)'라고 알려져 있는 세르반테스의 소설을 근간으로 탄생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Man of Lamancha)'.
찌그러진 세숫대야를 황금투구라 우기며 비루먹은 말 한마리와 아둔한 몸종을 데리고 '세상의 모든 부정과 비리에 맞서 싸우고자'
길을 떠나는 미치광이 기사의 이야기 정도로만 알고 있던 이 소설에 이처럼 깊은 인간의 '삶과 희망, 꿈'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어릴 적 읽었던 '돈키호테'의 한국어 번역판의 '가벼움'이 문제였거나, 나의 형편없는 독서수준을 탓해야
하거나, 아무튼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통한 돈키호테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충격적이다.

그것은 아마도 대일 와써맨(Dale Wasserman)이라는 각색자의 엄청난 재능이 만들어 낸 '일대 사건'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의 작가 세르반테스를 극 중에 포함시켜 그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풍자하는 '극 중 극' 형식의 창의적 구성을 비롯,
거리의 여자 '알돈자'의 역할의 확장을 통하여 순결한 숙녀 '둘시네야'의 존재를 그리며, '거울의 기사' 등 놀라운 풍자의 설정들을
새롭게 삽입한 점 등,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성공의 반은 극작가의 재능으로 이미 예견된 일이었음을 알게 된다.




일요일, 수빈의 주선으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성공의 또 다른 주역인 연출가 데이빗 스완(David Swan)씨와
점심을 함께 하였다. 너무도 소박하고 천진한 성품의 이 남자가 바로 그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뮤지컬 연출가라니..
거꾸로 생각하면, 열여섯이라는 나이 때부터 노래와 춤을 사랑하여 뮤지컬 속에 푹 파묻혀 3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다 보면
그런 소박하고 천진한 성품을 지닌 세계적인 연출가가 되는구나.. 라는 가정이 성립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일찌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그 일에 푹 빠져 살다 보면 저런 얼굴, 저런 명성을 갖게 되는거로구나..라는. 
수빈은 이번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연출 통역을 맡아 자기 표현처럼 '인생의 황금기'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최고의 뮤지컬 연출가를 '독선생님'으로 모시고 배우고 싶었던 뮤지컬 연출 공부를 원없이 배우고 있는 셈이니,
그 엄청난 행운을 놓칠세라 연습실에서 극장에서, 밤늦게까지 보내는 날들이 몇 주씩 이어져도 하나도 힘들지 않은 것이다.

몇년 전 어느 겨울, 삶이 지겨워 어쩔 줄 모르는 듯한 표정을 한 중학교 2학년짜리 여자애를 구원하기 위한 묘책으로
뮤지컬 '렌트(Rent)'에 데려갔던 날이 기억난다.  그 밤 여자아이의 인생은 통째로 뒤집어졌고 그 위로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다. 뮤지컬을 통해 갖게 된 자기 인생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으로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던
아이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더랬다.
 
공연을 연습하는 내내 수빈은 집에서 밥을 먹을 때나 샤워를 할 때나 층계를 오르내릴 때나, 끊임없이 노래를 부른다.
그 중에서 나도 이미 외워버린 구절 "둘시네야. 둘시네~야.."는, 극의 마지막 부분 죽어가는 돈키호테에게 다시 '꿈'을
되살려 주기 위해 돈키호테가 그녀를 위해 불러주었던 바로 그 노래를 둘시네야가 부르는 장면에 이르러
왜 수빈이 그 노래를 늘상 입에 달고 다녔는지를 이해하며 나역시 벅찬 가슴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꿈'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그 꿈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에 있지 않다.
꿈의 가장 소중한 부분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꿈꾸기를 포기하는 않는 바로 그 상태에 있음을
돈키호테가 부르는 '이룰 수 없는 꿈(Impossible Dream)'의 가사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오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걸으리라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네 저 별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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