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의 남은 이야기들-1

inamigination   2008/12/30 13:33


모.니.터. & 구.토.

엊그제의 시간들만 같으면 정말 정신이 몸을 버리고 떠날 것만 같았다.
숨돌릴 틈 없이 달려온 2008년. '자. 이제 끝이 보이고 있어. 조금만 더 가면 돼..'라고 스스로를 얼르고 달래며
이제 곧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방학'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한 해의 끝에서조차 몇날 몇일을
밤낮으로 노트북 앞을 떠날 수가 없었으니 정신이 느낀 배반감은 심하게 몸을 교란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는, 몸의 한계가 정신을 교란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 해동안, 모르긴 몰라도 하루의 반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내 눈을 혹사해 온 노트북의 모니터 화면은
극도의 난시를 동반한 원시를 재촉하여 안경 없이는 아무 글자도 확신을 가지고 읽을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내 눈이 모니터 화면이 아닌 것을 쳐다 보아도 좋은 시간이 내 인생에 얼마만큼을 차지할까에 문득 생각이 미치니
견딜 수 없는 구토가 일었다.

디자이너로서 디렉터로서 회사 안에서의 나의 모든 업무가 노트북 모니터 안에서 이루어지고,
교수로서 돌봐야 하는 많은 후학들을 간여하는 일이 모니터를 통하므로 그나마 시간을 벌 수 있으며
그 밖의 여러 이유로 사회로부터 요구되는 많은 일들이 또한 모니터 안에서 모니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여가시간을 이용하는 것조차도 완전히 떠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얻지 못하니 점점 더 나의 놀이는
모니터 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로 대체가 된다. 글쓰며 놀기, 사진찍으며 놀기, 음악들으며 놀기, 뉴스검색하며 놀기...
이 모두가 모니터 화면을 보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니, 아, 불쌍한 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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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올해 마지막으로 모니터와 몸살을 치르는 일이야.. 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하던 일들이 한 개, 두 개 추가되며
결국 그것으로 정말 한 해의 종지부를 찍으리라 마음 먹었던 <함께 사는 사회> 2009년도 기획안에 이어
한양대의 U-CEO 과정 브로슈어 디자인, 그리고 곽선영씨와의 새로운 프로젝트 '치와와걸과 맥스'의 스토리텔링 기획을 겸하며
바프의 내년도 실행안을 정리, 팀원들과 개별면담을 하는 것으로 정말 모두 끝이 날 거라 믿었던 일 뒤에
제대로 큰 일이 기다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15일 오전 이메일로 날라든(역시 모니터 화면을 통해) 은병수 대표의 메모...
그 메모 속에는 2009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총감독으로 선출된 그의 2009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대한 생각이 적혀 있었고,
이전에 몇차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기는 하지만 2009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대한 본격적인 기획안을 마련하는 일이
폭탄처럼 내게 투하된 것이다. 게다가 메모 한 장 툭 던져놓고 은감독님은 18일부터 27일까지 유럽 출장이라시니,
기획안 준비는 고스란히 내 몫이 되어 나는 결국 총괄기획 담당 큐레이터의 역할을 자처하고 말았다.

30일에 있을 이사회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하는 일에 앞서, 25일까지 기자회견용 기획안이 마무리되어야 하고,
18일부터 시작되는 출장 이전에 한번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17일 오후까지 불과 이틀밖에 안되는 시간 안에
메인 컨셉을 보완하여 강력한 '로직'을 만들고 세부사안들을 고루 갖추어 기획안의 틀을 마련해야 하니,
이 모두가 다시 모니터 화면과 심하게 몸살을 치러야 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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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베를린. 밀라노... 일정에 따라 총감독님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시는 동안, 나는 엉덩이를 한 치도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방학이니 집에 있는 앉은뱅이 책상 앞이다), 그대로 몸을 뒤로 젖혀 바닥에 누웠다, 다시 앉았다..를
반복하는 것 이상의 움직임은 필요치가 않았던 것이다. 이메일과 전화 문자와 통화로 이어지는 회의를 거듭하며,
점심을 거르는 것도 다반사로 하루종일 밤낮으로 진을 빼는 것이 벌써 여러 날 반복되고 있었다.
(네트워크의 또다른 끝에서는 구룡이 회사에서 집으로, 또 고향집으로 장소를 이동해 가며 PT 오프닝영상을 만들고 있었다..)

드디어 작업의 일정이 안정권에 들었다고 판단이 되는 순간, 참고 있던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넌덜머리를 치며 나의 정신이 나의 육체를 버리려 하고 있었다.
온 몸을 두들겨 맞은 듯 어깨와 발 다리를 일으켜 세우는 게 힘겨웠고,
내 눈을 누가 바늘로 찌르듯 도저히 모니터 화면을 쳐다 볼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청와대의 비서관으로부터 연락이 와 대통령님께서 쓰실 연하장을 급히 디자인해달라는 말에는
정말 제대로 구토가 나올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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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저녁 은감독님의 귀국 시간에 맞추어 살펴보실 수 있도록 화일을 웹하드에 올리고는,
스스로에게 잠시 여유로운 시간을 허락하기로 했다. 얼마 전 소주 데이트를 신청하던 종수에게 번개를 쳐서,
방학 중에도 시디즈 웹사이트 기획 때문에 회사에 나와있던 여형을 함께 불러 홍대 앞에 모였다.
소주 대신 사케를 마시며 대화의 주제는 반토막 난 펀드 이야기에서 집 이야기(홍대나 대학로 주변의 살만한 전세집은
꿈도 꿀 수 없는 가격이라 했다), 자동차 이야기(여형이 마음에 두고 있는 'golf'를 위해 건배했다), 오디오 이야기
(결국 크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집'이 또 관건이었다)에서 베스트 앨범 이야기(여형과 종수의 추천 베스트 앨범을 메모하느라
난 무지 바빴다)로 넘어와, '뭐니뭐니 해도 음악은 Rock'에 만장일치로 꽂힌 우리는 블루스 하우스로 이동,
신청하지 않아도 DJ가 알아서 틀어주는 주옥같은 락 넘버들에 열광하며 유쾌하게 호가든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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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가는데 블루스 하우스의 화장실 사인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하하.. 이 곳은 용변을 보는 이외에도 긴요한 용건이 있는 장소였다.

그렇다. 세상은 넓고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아 사람들을 종종 토하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좋아서 마시는 술을 토하기도 하고 좋아서 하는 일에 때로 넌더리가 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런 곳에서 서로 마주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곳에서 나와 눈이 마주친 사진 속의 인물은 누구일까. 죠지 해리슨이 맞을까.. )

2008/12/30 13:33 2008/12/30 13:33
김승현 2009/01/05 21:36 P X R

존과 폴보다 덜 유명하고, 작곡한 노래도 적지만(몇 곡 안 되지만 아주 쫀쫀한 곡들! 개인적으로 전부 좋아하는! 와일마이기타젠틀리윕스!), 조지 해리슨이 훨씬 더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 같습니다. 행복할 수만 있다면 넘버쓰리가 아니라, 넘버링 따위 없어도 좋지요. 새해 복 마이 받으세요.

dreaming 2009/01/06 02:24 P X R

존.폴.링고와는 달리 늘 조용하고 말이 없는 그..
그래서 그가 꽤나 잘생긴 얼굴이라는 것도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죠.
와일마이기타젠틀리윕스. 저의 패이버릿이기도 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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