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의 남은 이야기들-3
inamigination 2008/12/31 01:30
두.개.의.시.선.으.로.바.라.보.기.
혼자만의 놀이 중 내가 최고로 꼽는 것은 다름 아닌 '두 개의 시선으로 바라보기'이다.
하나의 시선은 1인칭으로, 또 하나의 시선은 3인칭으로 역할을 분담하여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눈 앞의 풍광과, 제 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를 포함한 풍광...
이 두 개의 시선을 번갈아가며 사진과 글로 기록을 남기며 즐기는 놀이이다.
'유체이탈 놀이' 또는, '전지적 시점의 놀이' 등의 표현으로 나는 나의 이 놀이를 설명하기도 한다.
(갑자기 이 '전지적'이라는 표현에 대해 확신이 가질 않아 검색을 해보니..
흠. 보다 정확하게 설명을 하자면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 되어야 하겠다.)
디카를 꺼내어 모니터를 포함한 창밖의 풍경을 찍고 그 사진을 다시 모니터에 올리며 감상을 하다보니
하하.. 이건 '두 개의 시선 놀이'가 아니라 '프랙탈 놀이'라 해야 옳을 것 같다.
똑같은 구도 안에 지나가는 사람들로 인해 서로 다른 그림을 만드는 사진들..
나의 사진찍기는 언제 다가올지 알 수 없는 '순간과의 인연을 위한 베팅'에 다름 아니다.
앙리 브레송이 말했던 '결정적 순간'도 따지고 또 따져보면 사진가가 결정할 수 있는 순간은 아닌 것이다.
문득 점심을 거른 일이 생각나자 밀물처럼 허기가 밀려들었고,
나는 바로 길 건너에 보이는 'Il Mare'를 나의 다음 행선지로 정하였다.
길을 건너 공중 전화 박스 안에서 3인칭의 시점으로 건너다 보는 스타벅스는 새롭다.
바로 조금 전까지라면 이 화면 안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니 이 또한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던 시간을 포함하더라도 불과 1분 전으로만 'play back'할 수 있다면
스타벅스 창가에 앉아 디카와 노트북을 번갈아 들여다 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나를 목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계단을 올라 일마레 안으로 들어서니 내가 노리던 창가의 자리는 모두 누군가가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그 다음 창가에 가장 가까운 자리로 부탁하여 안내를 받는다.
다시 한 장. 시선의 높이가 달라지므로 조금 전의 그 공중전화박스를 포함,
이제야 좀더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 걸맞는 사진을 찍을 수가 있게 되었다.

메뉴를 들여다 보며 혼자서 다 먹을 수 있는 분량의 메뉴를 고민한 끝에
'관자 구이' 에피타이저와 '봉골레', 그리고 와인을 글래스로 한 잔 주문을 한다.
그리고 다시 노트북을 열어 마주 하니, 진정으로 부러울 것이 없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구토증'을 일으키게 했던 모니터 화면이 이렇듯 맘에 딱 맞는 놀이 친구로 변신을 하다니,
역시, 모든 것은 다 마음의 일이었다.
눈이 아프네, 몸이 아프네 하며 몸살을 치르던 일들이 모두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나는 시동을 종료하지 않고 두었던 노트북의 화면을 통해 아까 찍은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 보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메뉴의 선택은 모두 탁월했다.
관자구이는 고소했고, 분량이 많지 않아 억지로 접시를 비우느라 애를 쓰지 않아도 좋은 '럭셔리한' 기분을 선사해주었다.
담백하면서도 맛깔스런 조개맛과 마늘맛이 듬뿍 밴 봉골레의 혀를 델 만큼 뜨거운 온도도 마음에 들었다.
(이 봉골레를 먹으러 가끔 이곳에 와야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샐러드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샐러드도 혼자서 먹기에는 너무 벅찬 양이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지금의 이 만족스러운 식사에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다.
나는 메뉴에 없는 도전을 감행하기로 하였다.
웨이터를 불러 혹 혼자서 먹을 수 있을만큼의 시저 샐러드를 만들어 줄 수 있는지를 물으며 그의 표정을 살피니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의 표정은 그의 말처럼 주방에 물어보기 전에도 이미 '부정적'이다.
예상대로 그는 내 테이블로 돌아와, 주방에서 그렇게는 안되겠다는데요..라고 전한다.
그럼 할 수 없죠..라고 대답하며 나는 속으로만 말을 이어간다.

여자 혼자서 먹기에는 너무 많을 것 같다고 안스럽게 설명을 했음에도, 그렇게는... 안되겠다니.
거기에는 친절하지 않은 여러 해석을 달아볼 수 있다.
메뉴에 나온대로 시켜 먹어라. 혼자서 다 먹기에는 너무 많을 것이라는 것은 너의 사정이다.
제 돈 내고 온전히 시켜 먹는 게 아깝다면 애를 써서라도 다 먹으면 될 것 아니냐..
하지만, 나의 이 멋진 혼자만의 시간에 그런 멋없는 해석을 다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나는 '1인칭 작가 시점'에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시선을 바꾸어 상황을 고쳐 이해해보기로 한다.
내가 메뉴 외의 주문을 부탁했던 그 웨이터는 좀 나이가 어려 보인다.
아마도 그는 경험이 부족할 것이고, 그런 일을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만한 위치가 아닐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는 혼자서 식사를 하는 여성 손님을 위해 배려의 마음을 발휘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며,
그런 행위 자체가 레스토랑의 이미지를 더욱 높여 자신이 일하는 직장을 위해 더욱 큰 기여를 할 수 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대상을 바꾸어 다시 시도를 해보기로 한다.
조금 여유로운 인상을 지닌 것으로 보아 홀매니저 정도가 돼보이는 남자.. 이 사람은 조금 다른 결과를 줄 수 있을지 모른다.
나의 부탁을 가지고 주방으로 가 잠시 후 돌아 온 이 남자의 대답은.. 빙고. 드디어 나의 뜻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고맙습니다.. 라는 인사와 함께 감사의 제스추어로 나는 와인을 한 잔 더 주문한다.
이로써 오늘 밤 나의 식탁은 완벽 그 자체가 되었다.
짭조롬한 앤초비 맛이 미각을 돋구어 주는 시저 샐러드와 추가로 주문한 와인 한 잔은 더할 나위 없이 나를 흡족하게 한다.


수빈한테 문자가 왔다.
엄마. 밥시간인데 보고싶어서 전화했어용. 열심히 하세요!!..
딸의 살가운 안부 문자에 나도 답을 보낸다.
엄마 혼자서 일마레 왔어. 이쁘게 우겨서 시저샐러드 특스몰도 얻어먹고 와인도 두 잔.
아까 스타벅스에서 찍은 사진 보며 포토샵을 친구 삼아 재미있게 밥먹었어.
운전 조심해서 와..
딸은 나의 문자에 미소지으며 다시 자기 앞에 놓인 여러 일들에 몰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로 또 함께..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잇고 있는 끈을 확인한다.

오랫만의 '혼자만의 시간'을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게 만들어 주었던 식사를 마치고 나니
홀 안에는 어느새 손님들이 가득하고, 웨이터들의 동작도 분주해지고 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해주고 싶어도 메뉴 이외의 주문을 들어줄 수 없었을 것이다.
계산을 하며 음식에 대한 칭찬의 말과 함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문을 나선 후 잠시 계단에 서서 계산서의 내역을 살펴보다 보니, 웬 걸. 문제의 그 샐러드는 내역서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저런.. 당황한 나는 다시 레스토랑으로 돌아가 아까의 그 남자에게 당혹스러움과 고마움이 섞인 나의 마음을 전한다.
네.. 자주 오시라구요.. 남자는 웃으며 나의 호들갑스러운 감사의 표현을 도리어 멋적게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2008년의 마지막 '혼자만의 시간'을 마치며 나는 생각한다.
바쁘고 힘들어도, 때로 토할 것처럼 넌더리가 나도
내게 주어진 삶과 그 삶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는 나 자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애썼어. 또 한 해..
글을 마치는 이 시간, 2008년은 어느새 하루가 채 안되는 시간이 남았을 뿐이다.
또 한 해 무사히 내 인생의 시간을 탐험할 수 있게 해준 2008년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