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rk XPress에 얽힌 회상

inamigination   2008/08/07 02:04


지난번 포맷할 때 날려버린 Quark 프로그램을 드디어 새로 깔았다.
Quark 6.5 버전의 인증과정이 워낙 까다로웠던 기억이 있어서
다시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 아득하기만 해서 미루어 왔던 일인데
일단 인증과정이 다 끝나지는 않았어도 화일을 여는 데는 문제가 없다.
서체가 제대로 다 깔리지 않은 상태라 엉망이긴 하지만.

사무실 전체가 Indesign으로 체제를 바꾼지가 꽤 된지라
이제와서 Quark이 필요한 이유는 오로지 한가지, 지난 화일들을 열기 위한 용도뿐이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화일들에 기록되어있는 나의 수많은 글들, 메모들을  되살려오는 것이
현재 내가 Quark을 필요로 하는 가장 갈급한 이유이다.

Quark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사실 나는 특별한 작업화일을 만드는 경우가 아니라도
거의 모든 글쓰기(생각을 기록하는 일 포함)를 Quark에 의존해 왔다.
워드 프로그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섬세하게 글꼴과 크기, 글자 사이 및 글줄 사이 등을
내가 원하는 상태대로 만들어 가며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수년간 내 머릿 속 생각을 기록한 Quark 화일들이
분량에 상관없이 여러가지 제목을 달고 산재해 있는만큼
Quark 없이는 오랜 세월 축수많은 생각의 실체들이 모두 무용지물이 될 판인 것이다.

완벽하게 프로그램이 깔린 상태가 아니라 서체는 물론 엉망진창이지만
지난 화일들을 열어 나의 소중한 '생각'의 실체들을 다시 만나게 되니 저으기 안심이 된다.
노트북의 여기저기에 꽁꽁 박혀있던 지난 화일들을 모두 찾아내어
그 내용을 다시 텍스트 화일로 카피하여 저장하는 일을 하느라 어제 오후를 모두 소모한 덕분에
우선 필요한 화일들은 웬만큼 회복이 되었다.
그 화일들이란 다름 아닌, '스튜디오 경영'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
여러 해에 걸쳐 만들어 놓은 컨텐츠 구성과 이미 작업을 마치거나 진행 중이던 원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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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내가 매킨토시 컴퓨터를 내 삶의 동반자로 들여놓게 된  가장 주요한 이유가
바로 Quark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 같다.

1988년 미국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북프로듀서'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실험이 시작되었는데
글과 이미지와 레이아웃을 내 마음대로 실험하며 자유롭게 작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도무지 없었다.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Kinko's에 가서
성능좋은 복사기에 붙어 살며 글자와 이미지를 확대하거나 축소 복사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던 중 '데스크탑 퍼블리싱 프로그램(D.T.P.)'이라는 것이 생겨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바로 딱 나같은 사람을 위해 과학문명이 발전을 거듭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을 본 듯 하였다.
즉각 컴퓨터를 사서 미국에서 유행하던 'Page Maker' 프로그램을 깔고는
본격적으로 데스크탑 퍼블리싱 프로그램의 환상적인 '놀이'에 빠져있을 즈음,
드디어 '한글'이 가능한 프로그램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망설일 것 없이 바로 한국으로 달려와 사게 된 것이 바로 Quark XPress였던 것이다.
그 즈음 새로 맡게 된 북 디자인 프로젝트로 받게 될 디자인료를 미리 땡겨서 비용으로 충당했으니
그 프로그램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르면서 그걸 이용해서 일을 하리라고 작정했던,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용감하기 짝이 없었던 시절이다.
용감했던 만큼 그 일을 잘 마친 것은 물론이다.
라인을 어떻게 '다단복제'하는지, 어떻게 '그룹핑'하는지 몰라
수없는 밤을 새가며 하나하나 만들어 붙이는 수고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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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최초에 구입한 Quark XPress의 버전은 2.0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후로 3.0대를 거치며 회사를 시작하고는 다들 그랬던 것처럼 오랜 시간 우리도 3.3 베타버전을 사용했다.
워낙 고가여서 하나도 아닌 여러 개를 정식으로 구입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에 대한 소문이 돌 때마다 '불시검문'에 대한 불안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
급기야는 한동안 '재택근무'를 한 적도 있었는데, 그게 벌서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불시검문'에 준한 전화를 받게 되었고,
나는 더 이상의 유예를 위한 방법이 없겠다는 생각에 구차하게 시간을 끌지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참에 다 사버리지요, 뭐."라고 경쾌한 대꾸를 날려 버린 것이다.
8세트나 되는 Quark XPress는 돈으로 치자면 2천만원이 넘는 금액이었고,
우리에게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돈이 틀림이 없었지만, 어쩌랴. 사야만 한다면 사야하는 것이리니.

그렇게 하여, 우리는 버젓한 정품 Quark XPress 6.5버전을 사용하게 되었고,
더이상의 '불시검문' 걱정은 물론, 남부러울 것이 없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이 지나지 않아 또다른 '불시검문'의 습격을 받게 되었으니
이번에 'Adobe'사로부터의 총부리가 겨누어졌다.

혁명의 역사가 원래 그렇듯 우리도 반격을 통해 새로운 혁명을  꿈꾸게 되었으니,
오랜 세월 '애증'의 관계를 지속해 왔던 Quark을 버리고 Adobe와의 본격적인 동반을 결정한 것이다.
때맞추어 안정감을 찾은 'Indesign'이 바로 우리의 대안이 되어주었고
이로써 우리의 자랑스러웠던 정품 Quark을 과감히 처분, 정품 Adobe CS3 체체로 전환을 하였으니
그로써 혁명의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Quark과의 오랜 정분을 감안하여 전부 처분하지 않고 두 세트를 남겨 놓았는데,
그 중의 한 세트가 바로 내 노트북을 위한 용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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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어느새 Indesign에 익숙하여 아무도 Quark을 그리워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내겐 잊을 수 없는 지난 날의 이야기들 속에 언제나 함께 자리할 것 같다.
북프로듀서가 되기 위한 나의 꿈을 실현시켜줄 구체적인 과학문명의 수단으로 내게 다가왔던,
'어둠 속의 빛'과 같았던 그 Quark이 5년만 늦게 개발되었어도
디자이너로서의 나의 오늘은 달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 쓰다 보니 정말 길어졌다. 이래서 블로그는 괴롭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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